[My Life] 마음 속에 고요를 찾으십시오.


"마음 속의 고요를 찾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을 오욕락(
五欲樂)-, 명예, 여자(또는 남자), 먹는 것 그리고 잠-이라 합니다. 이 오욕락 안에는 순간마다 작은 행복들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행복, 큰 행복은 이 오욕락에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의 바깥에서 얻는 행복은 언젠가는 끝이 나기에 허망합니다. 행복해지려면 우리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이 ()입니.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이런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에 1, 5분이라도 마음을 닦으면 내면 속에서 잠들어 있는 행복이 깨어납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나와 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커다란 원동력입니다. 생각을 쉬고 진정한 의정을 일으켜 번뇌 망상을 쉬면 깨달음을 얻고 자유자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쉬고 쉬고 또 쉬고의 참뜻입니다." 

<
쉬고, 쉬고 또 쉬고 무여선사가 들려주는 선
이야기>

 

J, 안녕!

고요한 밤이야. 성탄절이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캐롤송이 많이 들리네. 나는 예수님 오신 오늘이 너무도 고맙다. 그 한 분이 2000년간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지난번에 너는 무엇을 해도 허망하다고 내게 말했었지. 시간이 없어 충분히 말을 나누지는 못 해서 아쉬웠어. 나 또한 그런 허망함으로 마음이 헛헛했던 사람이라 오늘은 언니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내 경험을 조금 나누면 어떨까 싶다.

 

2000 2월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났지. 아니 그날 나는 을 만났어.

 

그분을 처음 뵌 날은 장갑을 낀 내 손이 무색할 정도로 찬바람이 옷 속으로 스미는 겨울날이었지.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 마음 속의 스산함이었어. 당시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 같았어.  내 나이에 비해 큰 차를 운전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고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쇼핑을 하러 다녔지만 즐거움은 그때뿐이었지. 허무해서 미치겠더라.

 

유니텔 사이트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20, 30대가 주축이던 한 통신불자모임을 가입했다. 그때까지 나는 불자도 아니었고 불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지. 그날따라 무슨 일이었을까? 그냥 [부처님 나라]라는 그 이름에 끌렸던 것 같아. 왜 보통 절들은 해인사, 조계사 뭐 이렇게 ~() 자로 끝이 나잖아. 나는 불교를 잘 모르니까 그런 절 이름들이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도 느껴졌지. 그런데 그 부처님 나라래. '나라' 라는 말이 친근하게 느껴지더군. 그냥 끌렸고 가입 버튼을 클릭했다.

 

몇 달 후 그 모임에서 한 스님께 배움을 청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 온라인 공지에 신청 댓글을 달았다. 내게 그 스님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스님들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그냥 주말에 누군가와 함께 할 거리를 찾고 있었으니까.
 

절은 경상북도 봉화라는 곳에 있었다. 주말 교통체증으로 가는 데만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절까지 가는데 바람이 씽씽 불었다이 추운 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담.’ 옷깃을 여미며 나는 투덜거렸다.

 

이튿날 우리는 법당에서 스님을 뵙기로 했었지. 그런데 날씨가 추운데 젊은이들이 고생한다며 스님께서 우리가 있는 방으로 직접 찾아오셨어. 우리가 삼배(三拜)-세 번 절하기로  일배는 부처님께, 일배는 진리의 가르침에, 일배는 우리 모두에게- 를 하는 내내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무릎을 꿇고 인사를 받으시데. 삼배가 끝날 때는 당신도 같이 머리를 숙여 맞절을 하시는거야. 예순이 넘으신 분이, 그것도 전국의 스님들에게, 불자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어른이 왜 어린 우리에게 절을 하실까 나는 내심 의아했어. 절이 끝나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분 얼굴을 마주했지.

 

~!’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망치로 친 듯이 나는 멍해졌다. 조용히 앉아계신 그분은 평온해 보였고 미소는 해맑았다.  이 느낌이분한테 느껴지는 이거, 도대체 뭐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분의 고요함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지. 어느덧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저 분처럼 될래.” 내 내면은 속삭였다.  J, 그때 이 언니는 알았단다. 마침내 내 방황이 그 자리에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 것을. 너도 알지. 이 언니가 20대 때 십 수개 나라를 다녔쟎니.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 바깥으로 달렸어. 그래도 내 삶의 기본 질문 '삶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까?' 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

 

산골마을에 사시는 노스님은 그냥 평안해 보였어. 회색 승복, 주름진 얼굴, 조용한 미소, 가구라고는 책상 하나 달랑 있는 방 안.. 그 모든 것이 내겐 새로웠고 끌렸다. 그날 이후 내 의식은 해바라기처럼 그분을 향했다. 마음 바깥에서 얻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고 허망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지. 왜 너도 알지. 대학합격의 즐거움도, 취업의 뿌듯함도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잖니나 없이는 죽겠다던 남자들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결혼하고 애 낳고 살더군.

 

나는 스님 말씀대로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기로 했지. 처음 2년간은 난 말 그대로 미쳤다’. 서울에서 봉화를 100번도 넘게 다녔다. 운전을 싫어하는 내가 주말마다 왕복 10시간을 운전해서, 더러는 고속버스 타고 택시로 갈아타며 축서사를 오갔다. 그때는 중앙고속도로가 제천인가까지만 개통되었었거든. 운전해서 뺑글뺑글 죽령 고개를 타고 오르면 현기증이 났어. 하지만 나는 스승이 계신 250KM가 멀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내 방황이 끝났는데, 어떻게 살면 되는지 알 것 같았는데 뭐가 문제람.

 

 나는 누구인가?”를 삶의 화두로 삼아 마음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루 5분도 좋고 10분도 좋았다. 이후 여름휴가 때, 겨울휴가 때 스승을 뵈러 갔지.

스님을 뵌지 1년이 지나고 나는 당신께 법명(
法名)을 청했다. 불자라면 그 안에서 불리는 이름이 있어야 하고 더욱이 스승한테 그 법명을 받아야 의미가 있지. 스님은 좀 생각해보자 하시데.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3,000배를 했다. 그냥 법명을 받을 수 없다고 초보 불자인 내가 나름 신실한 마음을 먹었던 게지. 아침 11시경부터 절을 시작해서 하루 종일 절을 하고도 모자라 밤을 새웠다. 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꺽였다. ‘아, 괜히 시작했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나는 절을 하는 16시간 중 12시간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새벽이 왔다.

 

3,000배가 끝나고 나는 말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는 잠이 깨었다. 무리해서 절을 한 여파로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큰스님께 올라갔다. 내 새배를 받으신 큰스님께서 흰 봉투를 내미셨다. 봉투 안에는 하얀 종이가 있었다. 나는 그 종이에 정갈하게 써있던 3 글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큰스님의 친필이었다.

(빼어날 수).(연꽃 연).(꽃 화, 장엄할 화). 

참, 넌 불자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 연꽃은 진흙에서 핀단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슬에도 물들지 않지. 이때 진흙은 어지러운 속세를 의미하고 연꽃은 우리 자신을 의미해. 우리는 내면에 불성(佛性)이라는 꽃씨를 가지고 있어. 살면서 그 꽃을 피우는거야. 연꽃은 불교에서 귀한 상징물로 사용되고 있지. 스님은 이름을 통해 내가 갈 길을 제시해주셨다. ‘속세에서 빼어난 인물이 될지라.’ 나는 그 봉투를 가슴에 품고 다시금 다리를 절뚝거리며 법당에 갔다.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올리는 내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지. "이제 저는 수련화입니다. 수련화로 살겠습니다."

 

한해 두해가 갔다. 헐떡거리던 내 의식이 서서히 안으로 향했다. 나는 생각과 번뇌망상을 쉬고 쉬고 또 쉬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이 편해졌다. 내 내면은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단다. 안 해도 좋단다. 하지 말고 쉬렴, 쉬고 나서 하렴,”

 

그리다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 점점 내 안의 번뇌망상이 사라졌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소리 - TV, , 사회, 회사, 부모, 수많은 외부소리 에 초연해지기 시작했다 

J,
이제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았다. 잠들어 있던 내면의 행복이 깨어났어. 난 이제 더 이상 지난 20대 시절처럼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명품 옷을 사지 않아도 편안하고 행복하다. 지난 30대처럼 일에서 성취를 하고 세계적인 매스터 코치를 꿈꾸며 용을 쓰지 않아도 좋아. 내면의 고요를 찾으면 영원한 행복도 만난다.

이런 행복을 알게 되니 내가 하는 것, 내가 가지는 것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더구나.
 직장도, 차도, 집도, 가족도, 취미도 더 이상 허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누리고 나누어야할 소중한 의미가 된다.

J!
사람의 인생이란 게 참 신기해. 2000년 나는 한번의 클릭으로 나는 불교를 만났고 또 한 번의 클릭으로 내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내 안의 고요를 만났다. 그 어른스님 덕분에 내가 살았다.

 

J! 너는 언젠가 나에게 왜 그리 열심히 사냐고 물었지. 기억나니? 그때 나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지.

이번 겨울 나는 거의 일을 놓고 있다. 칩거하면서 나를 돌이켜보고 있어. 지난 10년 간 나는 열심히 살았지. 내 스승은 내 안의 위대성을 깨워주셨어. 나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북극성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나는 살면서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지금 이순간 방황 속에 헤매던 그 누군가가 나를 만나고 내 강연을 듣고 내 블로그에 클릭을 하고 아니면 우연히 내 칼럼을 읽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 그러니 내가 그냥살 수 없게 되네.

 

밤이 깊었다. 잘 자렴. 다시 소식 전할께.

 


* 성찰질문
1.  평온하고 고요했던 휴식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무엇이 좋았습니까?

2.  내 내면에 고요를 찾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3.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지금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2가지는 무엇입니까?

(안내: 눈을 감고 모니터를 보지 않고 10초만 답변을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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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0. 12. 26.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