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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8 [My Journey] 선(禪) 그리고 Zen 4

[My Journey] 선(禪) 그리고 Zen


, 이뭣꼬!


 

노윤경

 

 

 

휘익~!  나를 태운 JR () 열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일본 카마쿠라에 있는 한 젠센터(Zen Center, Zendo)에 가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상지대 쿠스마노 교수님께 일본의 젠(Zen)을 경험하고 싶다고 특별부탁을 드렸다. 그는 30년 이상 일본 젠(Zen)을 해온 미국 신부이시다. 센터 내에는 격주로 일본어와 영어로 법문이 진행되고 미국, 독일, 일본에서 온 수십 명이 수행을 한다고 했다. ‘거기서는 어떻게 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전수받을까?’ 나는 오로지 그 생각에 젖어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지 11년째다. 헐떡이던 내 삶이 점점 편안해졌다.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덕분에 어떻게 선()을 실천하고 전세계에 선을 알릴까?’가 화두였다. 한창 상념에 잠겨 있는데 누가 자꾸 내 발을 찬다. “철야정진하라 했는데, 무슨 잠이요! 일어나!!” 영문 모를 호통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깜박 졸았나 보다. ,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 요코하마, 요코하마 ~” 방송에서 요코하마 역이라고 안내를 한다. 카마쿠라까지는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 대승사 수련회가 아니네! 선림원(禪林院, 조계사의 2년제 참선 대학원)에서 지난 주말에 문경 대승사로 수련회를 갔었다. 주지스님이신 철산스님은 수련회 참가자들에게 철야정진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해서 피곤했다. 자정쯤 몇몇 도반들과 선방(禪房)을 빠져나와 옆방에서 몰래 잤다. 철산스님이 이를 아시고 방으로 오셔서 우리를 발로 차며 깨우셨다. 그게 꿈에 나온 거다. 피식 웃음이 났다. 꿈에서까지 나오다니 내가 참선으로 꽤 고심하긴 하네. 하긴 그 고민 때문에 지금 카마쿠라에도 가고 있지 않는가?

 

나는 CEO 코치다. 리더들은 내 질문을 통해 내면에서 삶과 비즈니스의 답을 찾는다.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무엇이 나를 불법(佛法)으로 이끌었는가?    삼십대 초입, 나는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회사에서 승진도 했다. 나이에 비해 큰 차를 몰았고 일과 약속 속에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항상 무엇인가 2% 부족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경상도 봉화에 있는 사찰에서 한 스님을 우연히 만났다.

 

~!”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친 듯, 그 선승(禪僧)을 뵙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정갈한 회색 승복, 평온한 얼굴, 따스한 미소스님은 빛났고 고요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저분처럼 될래.’ 내 내면은 속삭였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나였다. 이후 그는 내 스승이 되었고 나는 스승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

 

나에게 선()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내게 스승은 간절히 기도하라 하셨다. 처음 3년간은 200번도 넘게 서울에서 봉화를 오갔다. 마침내 2003년에 퇴사를 하고 봉화로 갔다. 스승이 계신 축서사에서 200일 기도를 했다.

 

기도 후 스승은 내게 화두를 주셨다. “이뭣꼬~!” 스승은 선()이란 참나를 찾는 과정이며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하셨다. 나는 남아선호가 팽배한 시대에 둘째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내가 왜 태어났는지 궁금했었다. 게다가 당시 15년 넘게 영어에 빠져 살면서 정체성이 흔들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선은 내게 참생명이자 삶의 근원이라 여기며 좌복에 앉기 시작했다.

 

선림원과의 만남이 시작된 계기는?   어느 날 조계사에서 참선대학원을 설립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회지도층이 참선을 체계적으로 체험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도록 하는 취지라고 했다. 참선, 영원한 자유, 고귀한 벗을 모토였다. 거기에는 조계사 주지스님이신 토진스님과 제방 선승들의 발원이 담겨있었다. 그것이 바로 선림원(禪林院)이었다.

 

너는 더 가져도 좋다.” 부처님은 당시 굉장한 부자였던 수달다 장자(長子)에게 말씀하셨다. 수달다는 한역하면 급고독(給孤獨)이다.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에게 보시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나누니 세상이 따뜻해진다. 내게 선림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나누는 현대판 장자를 키우는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이거다 싶어 나는 서둘러 지원원서를 냈고 합격통지를 받았다.

 

선림원을 만나고 나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지난 8개월 동안 여름방학을 제외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모였다. 그간 선림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첫째, 체계적인 참선이론이 있었다. 고우스님, 적명스님, 월암스님, 영진스님 등의 열정 넘치는 법문과 강의를 접했다. 또한 봉암사, 대승사, 불교문화원 등지에서 수련회를 갖고 선을 체험했다.

 

둘째,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주지스님의 후원, 안심당이라는 맑은 공간, 헌신의 교수진, 운영진 그리고 봉사팀이 있었다. 따뜻한 차, 맛난 공양도 마련되었다. 특히 1기인지라 생길 수 있는 아쉬움 점들도 하나하나 개선되었다. 아니, 문제가 있다 한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좋은 스승이 있고 도반이 있고 도량이 있다.

 

셋째, 재발심의 시간이었다. 수행하겠다는 발심을 잊을 만 하면(!) 목요일이 돌아왔다. 리더에게 하루 저녁은 수십억 또는 수백만원의 거래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원우들은 모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선림원 원우들은 인생이라는 바구니에 크고 중요한 돌을 먼저 놓았다. 참나를 찾지 않고 어찌 근원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2년 선림원 수료 후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불법을 만나고 나는 더 이상 길을 찾지 않았다. 내가 바로 그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나, 현업에서나 바로 그 순간 현장에서 펄떡이며 살아있어야 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 했다. 나 또한 장자가 되어 불법을, 승가를, 장자들을 외호하겠다는 발원을 했다. 그 때문인지 학기 초에 선림원 총무로 선출되었다. 더 바빠졌지만 행복했다.

 

현재 나는 CEO 영어코치이다. “영어에 제약이 없다면 10년 후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를 화두로 CEO들이 바로 그 삶을 사시도록 서포트한다. 영어코칭의 첫 단계가 참나(True Self) 찾기이고, 중간단계가 영어실력 향상을 통한 성과 창출이며, 마지막이 어떻게 회향(回向)할 것인가 이다.

 

이제 선림원을 통해 내가 거듭 나서 우리나라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려는 CEO들을 더 근원적으로 도우려 한다. 리더들은 참선을 통해 내면의 불성을 밝히고 사업에서 참나를 구현할 것이다. 리더가 행복해야 조직이 행복하다.

 

며칠 전 삼성동 봉은사도 내년부터 선림원을 개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 땅에 더 많은 선림원과 장자가 나오기를 발원한다. 나는 이 여정에서 내가 할 일을 평생 생각하고 실천하리라.

 

카마쿠라, 카마쿠라

 

다시 방송이 나온다. 드디어 카마쿠라 역이다. 나는 짐을 주섬주섬 들고 열차에서 내린다. 멀리서 쿠스마노 신부님이 손짓을 한다. 내 얼굴에 활짝 미소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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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1. 10. 28.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