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 마음 속에 고요를 찾으십시오.


"마음 속의 고요를 찾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을 오욕락(
五欲樂)-, 명예, 여자(또는 남자), 먹는 것 그리고 잠-이라 합니다. 이 오욕락 안에는 순간마다 작은 행복들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행복, 큰 행복은 이 오욕락에 집착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의 바깥에서 얻는 행복은 언젠가는 끝이 나기에 허망합니다. 행복해지려면 우리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이 ()입니.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이런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루에 1, 5분이라도 마음을 닦으면 내면 속에서 잠들어 있는 행복이 깨어납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나와 남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커다란 원동력입니다. 생각을 쉬고 진정한 의정을 일으켜 번뇌 망상을 쉬면 깨달음을 얻고 자유자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쉬고 쉬고 또 쉬고의 참뜻입니다." 

<
쉬고, 쉬고 또 쉬고 무여선사가 들려주는 선
이야기>

 

J, 안녕!

고요한 밤이야. 성탄절이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캐롤송이 많이 들리네. 나는 예수님 오신 오늘이 너무도 고맙다. 그 한 분이 2000년간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지난번에 너는 무엇을 해도 허망하다고 내게 말했었지. 시간이 없어 충분히 말을 나누지는 못 해서 아쉬웠어. 나 또한 그런 허망함으로 마음이 헛헛했던 사람이라 오늘은 언니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내 경험을 조금 나누면 어떨까 싶다.

 

2000 2월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났지. 아니 그날 나는 을 만났어.

 

그분을 처음 뵌 날은 장갑을 낀 내 손이 무색할 정도로 찬바람이 옷 속으로 스미는 겨울날이었지.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 마음 속의 스산함이었어. 당시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 같았어.  내 나이에 비해 큰 차를 운전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고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쇼핑을 하러 다녔지만 즐거움은 그때뿐이었지. 허무해서 미치겠더라.

 

유니텔 사이트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20, 30대가 주축이던 한 통신불자모임을 가입했다. 그때까지 나는 불자도 아니었고 불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지. 그날따라 무슨 일이었을까? 그냥 [부처님 나라]라는 그 이름에 끌렸던 것 같아. 왜 보통 절들은 해인사, 조계사 뭐 이렇게 ~() 자로 끝이 나잖아. 나는 불교를 잘 모르니까 그런 절 이름들이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도 느껴졌지. 그런데 그 부처님 나라래. '나라' 라는 말이 친근하게 느껴지더군. 그냥 끌렸고 가입 버튼을 클릭했다.

 

몇 달 후 그 모임에서 한 스님께 배움을 청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 온라인 공지에 신청 댓글을 달았다. 내게 그 스님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스님들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그냥 주말에 누군가와 함께 할 거리를 찾고 있었으니까.
 

절은 경상북도 봉화라는 곳에 있었다. 주말 교통체증으로 가는 데만 6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절까지 가는데 바람이 씽씽 불었다이 추운 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담.’ 옷깃을 여미며 나는 투덜거렸다.

 

이튿날 우리는 법당에서 스님을 뵙기로 했었지. 그런데 날씨가 추운데 젊은이들이 고생한다며 스님께서 우리가 있는 방으로 직접 찾아오셨어. 우리가 삼배(三拜)-세 번 절하기로  일배는 부처님께, 일배는 진리의 가르침에, 일배는 우리 모두에게- 를 하는 내내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무릎을 꿇고 인사를 받으시데. 삼배가 끝날 때는 당신도 같이 머리를 숙여 맞절을 하시는거야. 예순이 넘으신 분이, 그것도 전국의 스님들에게, 불자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어른이 왜 어린 우리에게 절을 하실까 나는 내심 의아했어. 절이 끝나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분 얼굴을 마주했지.

 

~!’ 순간 누군가 내 머리를 망치로 친 듯이 나는 멍해졌다. 조용히 앉아계신 그분은 평온해 보였고 미소는 해맑았다.  이 느낌이분한테 느껴지는 이거, 도대체 뭐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분의 고요함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지. 어느덧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저 분처럼 될래.” 내 내면은 속삭였다.  J, 그때 이 언니는 알았단다. 마침내 내 방황이 그 자리에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 것을. 너도 알지. 이 언니가 20대 때 십 수개 나라를 다녔쟎니.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 바깥으로 달렸어. 그래도 내 삶의 기본 질문 '삶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까?' 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

 

산골마을에 사시는 노스님은 그냥 평안해 보였어. 회색 승복, 주름진 얼굴, 조용한 미소, 가구라고는 책상 하나 달랑 있는 방 안.. 그 모든 것이 내겐 새로웠고 끌렸다. 그날 이후 내 의식은 해바라기처럼 그분을 향했다. 마음 바깥에서 얻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고 허망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지. 왜 너도 알지. 대학합격의 즐거움도, 취업의 뿌듯함도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잖니나 없이는 죽겠다던 남자들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결혼하고 애 낳고 살더군.

 

나는 스님 말씀대로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기로 했지. 처음 2년간은 난 말 그대로 미쳤다’. 서울에서 봉화를 100번도 넘게 다녔다. 운전을 싫어하는 내가 주말마다 왕복 10시간을 운전해서, 더러는 고속버스 타고 택시로 갈아타며 축서사를 오갔다. 그때는 중앙고속도로가 제천인가까지만 개통되었었거든. 운전해서 뺑글뺑글 죽령 고개를 타고 오르면 현기증이 났어. 하지만 나는 스승이 계신 250KM가 멀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내 방황이 끝났는데, 어떻게 살면 되는지 알 것 같았는데 뭐가 문제람.

 

 나는 누구인가?”를 삶의 화두로 삼아 마음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루 5분도 좋고 10분도 좋았다. 이후 여름휴가 때, 겨울휴가 때 스승을 뵈러 갔지.

스님을 뵌지 1년이 지나고 나는 당신께 법명(
法名)을 청했다. 불자라면 그 안에서 불리는 이름이 있어야 하고 더욱이 스승한테 그 법명을 받아야 의미가 있지. 스님은 좀 생각해보자 하시데.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3,000배를 했다. 그냥 법명을 받을 수 없다고 초보 불자인 내가 나름 신실한 마음을 먹었던 게지. 아침 11시경부터 절을 시작해서 하루 종일 절을 하고도 모자라 밤을 새웠다. 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꺽였다. ‘아, 괜히 시작했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나는 절을 하는 16시간 중 12시간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새벽이 왔다.

 

3,000배가 끝나고 나는 말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는 잠이 깨었다. 무리해서 절을 한 여파로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큰스님께 올라갔다. 내 새배를 받으신 큰스님께서 흰 봉투를 내미셨다. 봉투 안에는 하얀 종이가 있었다. 나는 그 종이에 정갈하게 써있던 3 글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큰스님의 친필이었다.

(빼어날 수).(연꽃 연).(꽃 화, 장엄할 화). 

참, 넌 불자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 연꽃은 진흙에서 핀단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슬에도 물들지 않지. 이때 진흙은 어지러운 속세를 의미하고 연꽃은 우리 자신을 의미해. 우리는 내면에 불성(佛性)이라는 꽃씨를 가지고 있어. 살면서 그 꽃을 피우는거야. 연꽃은 불교에서 귀한 상징물로 사용되고 있지. 스님은 이름을 통해 내가 갈 길을 제시해주셨다. ‘속세에서 빼어난 인물이 될지라.’ 나는 그 봉투를 가슴에 품고 다시금 다리를 절뚝거리며 법당에 갔다.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올리는 내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지. "이제 저는 수련화입니다. 수련화로 살겠습니다."

 

한해 두해가 갔다. 헐떡거리던 내 의식이 서서히 안으로 향했다. 나는 생각과 번뇌망상을 쉬고 쉬고 또 쉬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이 편해졌다. 내 내면은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단다. 안 해도 좋단다. 하지 말고 쉬렴, 쉬고 나서 하렴,”

 

그리다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 점점 내 안의 번뇌망상이 사라졌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소리 - TV, , 사회, 회사, 부모, 수많은 외부소리 에 초연해지기 시작했다 

J,
이제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았다. 잠들어 있던 내면의 행복이 깨어났어. 난 이제 더 이상 지난 20대 시절처럼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명품 옷을 사지 않아도 편안하고 행복하다. 지난 30대처럼 일에서 성취를 하고 세계적인 매스터 코치를 꿈꾸며 용을 쓰지 않아도 좋아. 내면의 고요를 찾으면 영원한 행복도 만난다.

이런 행복을 알게 되니 내가 하는 것, 내가 가지는 것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더구나.
 직장도, 차도, 집도, 가족도, 취미도 더 이상 허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 누리고 나누어야할 소중한 의미가 된다.

J!
사람의 인생이란 게 참 신기해. 2000년 나는 한번의 클릭으로 나는 불교를 만났고 또 한 번의 클릭으로 내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내 안의 고요를 만났다. 그 어른스님 덕분에 내가 살았다.

 

J! 너는 언젠가 나에게 왜 그리 열심히 사냐고 물었지. 기억나니? 그때 나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지.

이번 겨울 나는 거의 일을 놓고 있다. 칩거하면서 나를 돌이켜보고 있어. 지난 10년 간 나는 열심히 살았지. 내 스승은 내 안의 위대성을 깨워주셨어. 나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북극성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나는 살면서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지금 이순간 방황 속에 헤매던 그 누군가가 나를 만나고 내 강연을 듣고 내 블로그에 클릭을 하고 아니면 우연히 내 칼럼을 읽고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 그러니 내가 그냥살 수 없게 되네.

 

밤이 깊었다. 잘 자렴. 다시 소식 전할께.

 


* 성찰질문
1.  평온하고 고요했던 휴식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무엇이 좋았습니까?

2.  내 내면에 고요를 찾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3.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지금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2가지는 무엇입니까?

(안내: 눈을 감고 모니터를 보지 않고 10초만 답변을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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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0. 12. 26. 00:19

[존재 이야기] 너는 특별하단다. (맥스 루카도)

목수 아저씨 엘리는 저마다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웸믹이라는 작은 '나무 사람들'을 만든다. 웸믹들은 모두 한 마을에 같이 산다. 그런 웸믹들은 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가 든 상자를 들고 다니며, 서로에게 별표나 점표를 붙인다. 별표는 자랑거리였지만 점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점표가 많았던 펀치넬로는 우연히 루시아를 만난다. 루시아는 다른 사람들이 별표나 점표를 붙이면 그것이 이내 떨어졌다. 펀치넬로는 그런 그녀를 보고 놀라고 그녀를 통해 자신을 만든 엘리 아저씨를 만난다. 펀치넬로는 이내 알게 된다. 별표와 점표를 허용한 것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가 뭐라고 평가하던 `나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특별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 그에게서 별표와 점표가 떨어져 나갔다.  

<너는 특별하단다. - 저자 맥스 루카도


  

삶에서 힘들었던 것이 축복이 될 수 있다. 큰 눈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던 여섯 살 꼬마 계집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엄마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아유, 재가 남자아이였다면 우리 원철이(셋째)를 낳지 않았을 거여요." 라고 이야기했다. 1970년대에는 남아선호 사상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범국민운동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그 말을 들은 꼬마 아가씨의 마음 속에는 "그렇담 난 왜 태어났지?"라는 질문이 생겼다. 이후 그 질문은 30년 넘게 그 아이를 따라 다녔다.

 


36년 전 내 이야기이다.  그 날 이후 내게 '둘째=불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삶에서 가장 큰 ‘점표’가 되었다. 이후 부모님에게 별표를 받기 위한 내 눈웃음과 애교가 시작되었다. 커가면서 별표를 받아야하는 대상은 선생님들로, 친구들로, 주변 사람들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영어는 내 삶에서 가장 큰 별표였다. 중학교 1학년 처음 배운 영어는 내게는 신기한 존재였다. "어떻게 이거 가지고 어떻게 눈 파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지?" 또랑또랑한 내 목소리는 영어와 잘 어울렸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가 책을 읽으면 영어발음이 예쁘고 영어를 잘 한다며 칭찬해주었다. 그때마다 영어수업시간의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국어시간에 책 읽을 때면 나는 여전히 떨었다.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할 때 내게 별표를 잔뜩 붙여주었다. 난 큰 별표들을 받는 맛에 쏙 빠졌다. 시간이 되고 돈이 될 때마다 영어학원을 다녔고 외국을 나갔다. 별표들을 몇 개 받고 나면 한동안 외롭지 않았다.

 

20대도, 30대도 나는 친구들에게 또는 초면의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튀는 행동도 하고 밥도 샀다. 30대 초반까지 내 화장도 '나를 좀 봐주세요' 하면서 입술은 빨갛고 눈덩이는 파랬다. 머리도 노란색, 분홍색, 갈색으로 물들였다. 주변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았고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속이 상했다.

 

반면 나는 여자인 것도, 둘째인 것도, 한국사람인 것도 싫었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의 미국사람은 키도 크고 잘 생겨 보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미국인들과 “I want an orange. I want this.” 수준을 넘지 않는 대화를 하는 내 자신이 못나 보이고 자존심도 상했다. 내 자신이 바보라 여기며 나는 내 스스로가 내 몸에 점표를 덕지덕지 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내면은 허무해졌다. 영어 좀 해보겠다고 미국을 가도, 영어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돈을 2배를 더 벌어도, 대학원을 들어가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를 해도, 내 삶의 근원적인 질문 “나는 왜 태어났지?”에서 나는 자유롭지 않았다. 그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도망가기 위해 20대 때는 술은 마시기를 여러 날이었다. 술을 마실 때는 그 질문을 잊었으니까.

 

하지만 술이 깨면 현실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질문에 답을 찾지 않으면 숨막혀 죽을 것 같았다. 나는 회사를 떠났다. 2003년 9월 나는 미국 뉴욕으로 갔다. 여행을 하면서 쉬면서 나는 내 마음을 정리했다. 3 주 후 나는 경상도 봉화 축서사로 갔다. 축서사에는 내 스승이신 무여스님이 계신다. 1999년 나는 불법을 만났고 2000년 내 스승을 처음 만났다. 나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4월까지 봉화 축서사에서 200일을 보냈다.

200일 기도 기간 동안 나는
회색 몸빼(?) 바지를 입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법당에서 기도했다. 내 스승님이 시키신 대로 나는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더불어 하루 두 시간씩 공양간(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고 법회 심부름을 도왔다. 서른하고도 다섯 해 동안 살면서 했던 설겆이보다 절에서 한 달동안 했던 설겆이가 더 많았다. 스님들 말씀에 절을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내면을 잘 볼 수 있다 하셨다. 수백번을 1080배를 하고 수십번을 삼천배를 했다. 200일 사이에 10킬로가 빠졌다. 대학교 4학년때 미국연수 가서 10킬로가 빠진 이후 2번째다.

 

기도가 끝나고 1년이 넘게 흘렀다. 2005 12 28일에도 나는 겨울 영하 10도의 법당에서 등에 땀이 나도록 절을 하고 있었다. 겨울 휴가를 산사에서 보내기로 했던 참이었다. 그때 무엇인가 강력한 충격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쿵~ 하고 내려왔다. 그건 사랑이었다.

내 내면은 내게 이야기했다. "네가 태어난 이유가 바로 사랑이야." 나는 당황했다. "사랑? 온 세상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쓰고 말하는 그 사랑? 딸랑 그거?"
나는 당황했다. 마음수행을 하면 뭔가 대단한 그 무엇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삶의 목적 또한 대단할 줄 알았는데 그냥 '사랑'이란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후 며칠간 밥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세상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뭔가 알아진 듯한 그 느낌! 나는 계속 웃음만 나왔다.

별표와 점표가 내가 아니었다. 세상은 항상 그렇게 존재해왔다. 둘째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였다.
예전의 관점이라면 나는 둘째고 여자였기 때문에 태어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법당에서의 순간 이후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거기다가 둘째들에게는 집 안에서 첫째에 비해 적은 책임감이 있었다. 그 덕분에 세상의 많은 둘째들이 더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붙여준 별표와 점표는 내가 허용할 때만 별표가 되고 점표가 되었다. 사람들이 "윤경이는 둘째야."라고 말했고 나는 그것을 점표로 인식했다.

엄마는 "우리 윤경이, 우리 여우 새깽이"하면서 내 엉덩이를 두드려주시며 안아주곤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이마에 "나는 둘째예요."라고 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그 점표는 내가 내 자신에게 부여한 가장 큰 별표였다.  그 점표 덕분에 나는 지난 30년 간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기 위해 국내외를 다녔다. 2005년 12월에 나는 인간은 태어난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달았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사랑이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 깨달음 덕분에 내 생각은 깊어졌고 영혼의 친구들(소울 메이트)이 생겼다. 존재 이유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생겼다. 나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리라.

 

나는 별표도 점표도 아니었다. 또한 별표가 점표가 되고, 점표가 별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천직인 코칭을 만났다. 아니 그것들을 알았기에 코칭이 내 천직이 되었다.

2005년, 가슴으로 사는 삶을 알았다. 지난 5년간 나는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성공도 시행착오도 많았다. 나를 통해 인생이 바뀐 분들도 수백명이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내 모습에 실망하고 떠난 분들도 있었다.

2010년 12월이 되었다. 이제 나는 별표에서도 점표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누군가 나에게 삶에서 가장 감사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1969년도에 한국에서 우리 부모님의 둘째딸로 태어난 것입니다.

 

“나의 별표는 무엇인가, 나의 점표는 무엇인가?

“이 별표에서도, 점표에서도 자유롭다면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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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0. 12. 13. 15:58

[My Love, My Passion] 조국에게 바칩니다.


<오늘의 명언>
조직에 헌신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발현한다!”

팀의 최고스타는 팀이다.”    미국의 위대한 코치 John Wooden

 

http://blog.naver.com/vonchio/110087516545  <-  John Wooden 코치에 대한 본시오님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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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6 5일 난 <English and Beyond 코칭 1기>를 런칭했다. 삶의 소명을 담아 내가 직접 만든 그룹코칭 프로그램 제 1기이다. 사정 상 일찍 자리를 비우셔야 했던 영웅님까지 총 13 분이 참석하셨다. 나까지 14 사람이다.

 

건물은 중앙냉난방 시스템이었고 아직 6월이라고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토요일 한낮의 공기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내가 진행하는 내내 나는 9시간의 2/3는 서있었다. 참석자들도 토요일 오후를 후덥지근한 강의장 안에서 9시간을 함께 했다. 토요일 9시간을 자기계발을 위해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도 몸의 휴식도 잠시 내려놓은 분들이다. 아니, 집과 강의장을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11시간이다. 그들은 몸은 조금 힘들어도 대신 영혼을 적시러 오셨다. 마음이 열려있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분들이다. 난 이런 분들을 만나는 인복(人福), 천복(天福)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서로 꿈을 꾸고 나누고 체험해나가면서 서로 다독여주고 에너지를 주었다. 우리 모두는 밤 9시가 가까운 시간에서야 집으로 향했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컨텐츠를 드리기 보다는 그룹 에너지를 형성하는데 집중했다. 지난 20년의 내 경험을 통해 그룹의 힘이 모든 학습에 가장 큰 근간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코치가 참가자 각자의 위대함을 끌어내는 것보다 팀이 스스로 위대함을 끌어내도록 할 때 더 큰 성과가 난다. 영어 컨텐츠는 그 다음에 드려도 늦지 않다.

 

가슴 벅차 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큰 짐이 한 번 즐겁게 놀아볼 만한 장난감을 만난 느낌입니다.”

 “Time!”

 

끝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지난 20년간 수 백 명을 대상으로 1:1 영어티칭과 코칭을 진행했다. 그룹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이다. 하지만 영어 그룹코칭을 1일 공개과정으로 연 것은 첫 걸음이었다. 여기서는 영어실력과 레벨이 상관이 없다. 최고의 나를 만나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영혼과 심장에 불을 지피고 싶은 갈매기 조나단들이 함께 한다.

 

내용과 진행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딸랑 10%이다. 더 개선할 여지가 산더미처럼 많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개선하여 최고의 코칭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

 

예상 외의  큰 선물을 받은 사람은 나였다. 참가자들이 함께 나누면서 친구가 되어가고 서로가 다른 속도로 꿈을 찾아갔다. 상대가 변화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면 내 가슴이 설레였다. 거기다가 난 왜 태어났을까?”에 대한 더 명확한 대답을 찾았다. 영어광풍으로부터 근원적 자유!, 세계 무대를 훨훨 나는 대한민국이다. 어제부로 더 명확해졌다.

 

이전의 영어는 English 1.0! 먹고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배워야 했던 영어다.

 

요즘은 English 2.0! 나와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한 영어다. 이로써 우리의 위상이 높아지고 우리는 매력적인 한국, 끌리는 한국인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English 3.0! 우리의 영혼과 가슴에 뜨겁게 불을 지필 수단으로서의 영어다. 코칭과 강연으로, 몸과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통해 세상에 사랑, 평화, 자유를 선물한다.

 

6 6일 현충일이다. 어제 여파로 피곤했는지 오늘 아침과 오후 내내 몸살을 앓았다. 아픈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한다. 우리나라와 부모님들 그리고 순국선열을 위해 나는 <English and Beyond 코칭>을 헌사한다. 영어로 고통 받았던 세상은 우리 세대로 충분하다. 영어 때문에 10년 넘게 매일 10시간 이상 울고 웃었다. 미국 1년 가서는 10킬로가 빠졌다. 이후 서울 시내 중형 아파트 1채는 족히 됨직한 금액을 투자했다. 영어를 위한 30,000시간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른 분들이 영어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돈 쓰고 스트레스 받는 세상이 싫다.

Sharon 노윤경이 원하는, 우리가 원하는 따스한 세상은 결코
나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그 세상을 만들고 싶다. 간절히, 간절히 원한다.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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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왜 글로벌 시대의 1인창조기업인가?

한국리더십센터(www.eklc.co.kr) 의 <소중한 것 먼저하기> 뉴스레터에 게재될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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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글로벌 시대의 1인창조기업인가?


                                                                                  노윤경/노윤경코칭부티크 대표코치
                             

내 이름은 노윤경, 이제껏 나는 세 번 결혼했다. 지난 20년간 영어(30,000시간), 내면성찰과 코칭(30,000시간)에 미쳐 살았다.

 

20대 때 나는 영어를 한없이(!) 잘하는 미국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내면에서 서서히 미국화가 되었고 결국 20대 후반 지독한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덕분에 나는 30대 내내 “나는 누구인가?” 는 치열한 내면여행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멀쩡한 회사도 그만 두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사람도, 스님도 될 수 없었다. 그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었다. ‘나 아닌 곳에서 나를 찾는 것은 그만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만난 것이 코칭이었다. 순간 '이거다!' 싶었고 이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인생을 걸었다. 죽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흘렀다. 덕분에 나를 찾았고 이제 코칭은 내 천직이다. 그 코칭과 영어를 접목해 세상에 없는 <영어코칭>을 창조했다. 이제 나는 국내 코칭계에서 대표적인 개인코치 중 한 명이고 동시에 <1인창조기업협회>의 공식멘토다.


지난 20년간 치열한 삶의 여정-영어, 불교, 코칭- 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나는 누구인가?" 에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언제 행복하고 신이 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면밀히 알수록 삶과 일을 잘 창조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진실한 삶이 잘 반영된 결과물이 1인창조기업이다.

 

나의 정의에 따르면 1인창조기업가란 ‘주인의식’으로 내 삶과 전문분야를 ‘창조’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광의(廣義)로 보면 현직 CEO, 직장인도, 구직자도 모두 1인창조기업가이어야한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 시대의 1인창조기업인가?

 

첫째, 지피(知彼): 세계가 그리고 시대가 원한다. 모든 것이 촘촘히 연결되는 글로벌 시대가 도래했고 전세계 흐름이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은 국경이라는 외부의 장벽을 넘고 ‘난 안돼.’라는 내면의 장벽을 넘어 꿈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세분화되면서 서로 다른 솔루션을 원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수의 고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직(創職)’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1인창조기업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둘째, 지기(知己): 우리 자신이 원한다. 이제는 회사가 직원들을 평생 책임질 수 없으며,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이다. 사람들 또한 하고 싶은 일을 속박 없이 하기를 원한다. 그 핵심에 “나는 누구인가?”가 있다. "컨텐츠 = 내 재능/열정 = 나자신" 이어야 한다. 그래야 초고령사회에서도 평생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진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잘 설계하고 하루 1시간, 아니 30분이라도 투자하면 된다. 산 정상에 이르는 여정 자체에 충만함이 있기에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의 문제이다. 코치는 내가 원하는 산을 내가 원하는 속도로 즐겁게 가도록 안내하는 전문 쉐르파이다.

 

요컨데 "왜 글로벌 시대의 1인창조기업이고 당신은 어떻게 몸값을 10배 올렸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공명’(이끌림)이라고 답변한다. 1. 시대와 공명하는 '글로벌' 무대에서 2. 나자신과 공명하는 을 하면 3. 공명하는 고객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성과도 2, 행복도 2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워는 배가(倍加)된다.

 

행복과 성공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시대의 요구(글로벌)와 정체성(1인창조기업)이 만나는 자리에 있다. 가슴에 손을 대고 묻자. “진정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노윤경 코치: Global Competence Creator

() 한국코치협회 인증심사위원/코치(KPC)

() 1인창조기업협회 공식멘토/강사

코칭/강의/강연(영어&한국어): 기업체, 대학교수진, 전문직, CEO 그룹

) 한국신용평가정보 해외제휴업무 담당 (무디스, TU, 골드만삭스 등)

연세대 국제대학원(국제경영)/외대 영어과/토익 만점(99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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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0. 1. 20. 08:59

[Blessing] 천직(天職)은 천복(天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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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Sharon의 뉴스레터 편집>

천직은 천복입니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은 짧아지고, 평균수명은 늘고 의료기술은 늘어 예전보다 10~30년은  '무엇인가'를 해야 더 의미있는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한생존’ 차원이었으나 이제는 점차 충만한 삶을 위한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 덕분에 <내 직업이 내 평생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펀드, 주식 등도 결국 내 일이 있으면서 누려야 행복한 부차적 자산일 따름입니다.  

그러기에 천직(天職)은 천복(天福)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평생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이때 핵심이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 ‘Being(존재)’에 있습니다. 참자아를 경험하고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알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없죠.

 

동시에 내 안의 씨앗을 잘 알아 내가 장미꽃인지 백합인지 알고 거기에 맞는 토양과 환경을 주어 나자신을 꽃 피워야 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나를 꽃 피우는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천직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지기(知己), 곧 나를 아는 것입니다. 핵심은 재능(내가 잘하는 것)이 열정(내가 원하는 것)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꿈이 큰 분들과 공명하고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고 능합니다. 특히 영어를 잘 하고 좋아해서 다른 사람의 영어를 돕는 것도 좋아하며 글로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죠. 공감과 경청을 잘 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꿈 꾸고 이루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신이 납니다. 자기계발과 학습도 좋아하고요. 이런 저는 코칭, 상담, 강연, 종교활동, 사회봉사, 코디네이터, 글쓰기가 적성입니다.

 

둘째, 지피(知彼), 곧 세상을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를 알고 세상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는 것입니다. 같은 악기라도 어떻게 관리하고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나를 최고의 환경에 두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배우고 누구와 일하며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어느 고객과 함께 있을 것인지 잘 알아 내가 잘 성장하도록 설계를 합니다. 이것은 곧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이제는 대규모 대중 강연이나 1:1 개별 또는 소수의 맞춤식 교육이 각광을 받는 세상입니다. 강사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상대의 열정과 내면을 깨워 잠재력을 발현시킬 때 상대는 더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코칭이죠. 즉, 이제는 대중강연과 코칭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코칭을, 특히 그 중에서도 <글로벌 1% 코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대중강연을 하고 또한 미래에는 이러한 코치들의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CEO가 되려고 합니다.

 

이러한 지피지기로이거다!’ 싶은 것을 만나야 하죠. 그리고 그 분야를 만났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120% 몰입하십시오.

 

가슴과 영혼이 뜨거워지면 내 안의 '최고의 나'가 발현됩니다. 이는 1,250도에서 흙과 유약이 만나 최고의 고려청자가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내가 스무살이던, 일흔이던 중요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나를 만나는 것은 궁극의 자기사랑이며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니까요.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면 내리막길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경우안정되고 멀쩡한회사 나와서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개인사업을 하면서 고전하기도 하고, 또는 잘 나가는 대학교수직 마다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돈 쓰고 시간 씁니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그냥 살지, 무슨 영광 있겠다고 그러냐?” 는 소리도 듣죠. 때론 거센 물살을 만나 좌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면의 소리를 따라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압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삶은 충만함과 감사함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필연 속의 우연으로 '문득(!)'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훨훨 날아 비상하죠. 사실 그 기회는 스스로 땀 흘려 지은 복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은 하늘이 돕습니다. 사실 나를 응원하는사람들이 그 하늘입니다. 그분들의 소망과 응원의 에너지가 소리 없이 모여 내게 길을 열어줍니다.

 

Bl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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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09. 8. 25. 1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