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진주의 잉태 - 아픔은 성장을 낳는다(3)

2007년 들어 제가 배운 제일 소중한 교훈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입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 사랑의 최고치는 ‘내가 누구인가’ 를 알고 그 모습대로 사는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그대로 살기 전까지 계속 인생이 괴롭습니다. 성공은 ‘내가 진정 원하는 모습대로 살기’이고 행복은 ‘그 삶에 미소 짓기’입니다.

이제 저는 차근차근 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서 인정을 구하지 않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저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직 서툴어 처음 걸음마를 배운 아기처럼 한발 한발 아장아장 걷습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다투기도 하고 서운해 하며 멀어지지만 곧 화해를 하고 서로에 대해 배웁니다. 나를 알아가는 도중에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꾸준한 실행력으로 종국에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나를 알고 사랑하기는 꼭 주먹을 불끈 쥐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롭게 손을 편 채 마음을 내려놓고 살면 오히려 더 즐기고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의 한 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장을 엽니다. 그리고 오늘도 자신의 존재대로 사는 연습을 합니다.

정말이지 인생에서 저에게는 행복하라는 숙제 외에는 없습니다.
2007년 1월 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째, 세계적
전문역량을 가진 우리나라의 조직과 기업체 인재들과 전문가들이 글로벌 수준의 행복과 성공을 이루어 나가면서 세계에 기여하도록 돕는 코치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이 재산입니다. 영어라는 날개를 달면 세계 1% 이내로 성장할 수 있는 탁월한 인재들이 많다고 믿습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재미있는 영어코칭을 통해 세계기관, 학회, 다국적기업 등 많은 곳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문코치 자격도 이수하고 이제껏 전문직, 기관과 기업체 임원코칭을 해 오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90년부터 제 영어이름은 Sharon입니다. 제가 영어를 말할 때 민간외교사절단의 일원이라는 믿음 하에 국화인 무궁화, 즉 Rose of Sharon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저를 Sharon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감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한 송이 꽃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자칭 ‘Flower of Korea, flower of the world’입니다.

저는 세계적 역량을 가진 우리 대한의 전문가들에게 영어가 걸림돌이 아닌 날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로벌 전문가는 단지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세계의 문제입니다. 우리 한명 한명이 꽃이 되어 한국을 알리고 세계인들과 나눌 때 세계는 함께 성장합니다.

결심은 20대의 제 부끄러운 삶에 대한 깊은 자성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실수와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나라와 세계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우리들이 아픔과 고통을 통해 성장을 하며 인생이라는 귀한 진주를 잉태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진주는 성장이고 기여이며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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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18. 18:34

[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진주의 잉태 - 아픔은 성장을 낳는다(1)

저는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동시통역사가 멋져 보였고 동시통역대학원으로 유명하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1987년도는 6.29 선언이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등 민주화 운동으로 소란스러웠습니다. 선배들은 반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고 1학년인 우리들에게 이념 써클과 학회 스터디를 권유했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고 3 때 ‘건대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때 언론에서는 '건대 시위가 체제 전복을 하려는 급진 운동권들의 소행이며 그 시위가 북한의 공작이다.' 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지원과 협력관계를 필요로 하는 정부에게 그들은 위험한 친(親)공산주의자였습니다. 마침 언니의 친구 중 한명이 그 시위에 가담하여 건물 속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언론의 말을 무조건 믿었던 저는 그 언니가 간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학 후 그 선배들이 들려주는 사회, 광주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간 언론에서는 편파보도를 한 것을 알았고, 민주화 운동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계속 파행으로 치달았고 많은 교수들이 어용으로 몰렸었습니다. 나는 교수님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영어 전공’과 ‘반미’는 묘한 관계라 조용히 혼자 영어를 공부하고 서구의 언어, 문화 그리고 사회를 공부한다면 ‘친미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시각으로는 ‘반미’가 아닌 ‘승미(勝美, 미국 앞지르기)’ 또는 ‘협미(協美, 미국과 윈윈 협력)’가 해결책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배들과 우리는 세계의 흐름을 보며 미국으로부터 배우려 하기보다는 공부 자체를 거부했고, 우리 20대의 젊은 혈기는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민주화와 정의를 외쳤습니다.

서서히 기성세대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마저도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대학교 졸업해서 직장 잡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사는 ‘행복 시나리오’가 의심스러웠졌고, 우리 모두가 태어난 데에는 좀 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고 느꼈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 심오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점점 공부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수업일수도 간신히 채웠고, 저는 대학시절 간신히 평점 B학점을 유지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열정이 있었으나 분출할 곳이 없었고, 우리들은 술을 마시며 사회를 성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니 이제는 취업 준비로 다들 마음이 바빴습니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반미’를 외치는 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준비할 일도 없었습니다.

‘해외연수를 가볼까’, ‘학원 강의를 해볼까’ 또는 ‘어학원에 좀 더 다녀 영어실력을 늘려볼까’하는 두서없는 생각이 이어졌고, 이런 생각들을 실행에 옮겼지만 여전히 저는 출구를 몰라 답답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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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16. 09:13

품격 스피치 - How should I address your name?

앞으로 품격 스피치에서는 서바이벌 영어에서 한단계 나아가 듣기 좋고 섬세한 고품격 표현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영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가 있습니다.

젊쟎은 자리라면 같은 의미이더라도 좀 더 품격있고 격조있게 말하는 편이 상대에게 더 호감을 줍니다.

What can I call
you?  -> How should I address your name?

A: How should I address your name?
B: Oh, just call me John.
A: Nice to meet you, John. Please call me Sharon. It comes from 무궁화, Rose of Sharon, the national flower of Korea. (상대가 내 이름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부가 설명을 붙여주면 오랫동안 기억합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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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Friends of Shaon l posted at 2007. 10. 13.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