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제행무상 - 모든 것은 변한다.(1)

제가 서른 한 살 때 평생 제 스승이 되실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도 오지인 경상북도 봉화의 한 사찰에 계시는 그분은 국내에서 평생을 마음공부를 해오셨다는 존경받는 수행자라고 누구인가 제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처음 그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는 '!'하고 말문이 막혔습니다그에게서 나오는 자애와 평온함이란 놀라웠습니다. ‘이럴수가 있구나. 언어를 떠나 온 몸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구나. 나 저분처럼 될래.

그분은 길을 잃고 헤매이던 제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한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매일 매순간 제 몸도, 마음도,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산도 바다도 변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서 모든 고통이 시작됨을 알게 되었지요.

인간도 세계도 관계도 매순간 변하고 사람은 나고 죽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평생 내 옆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정이 사랑이 되어 점점 더 불타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doing), 내가 가진 소유(having)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변하는 대상에 내 행복의 기반을 두면 내 행복은 쉽사리 변하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은 곧, 변하지 않는 진리에 기반을 한 행복은 변치 않는다는 의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상처받을 일도, 상심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모든 일과 사람관계에 있어 마음의 준비를 하면 당황하거나 과거에 집착하고 매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없었습니다.

평생 저는 항상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던지 어디에서 누구와 있던지 즐겁고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항상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의미와 즐거움을 찾아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재미가 없고 식상해졌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취미생활도 시도했지만 즐거움과 만족감은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허전하고 공허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잊을까 싶어 많이 마셔보았지만 더 괴롭기만 했고 술에 취해 실수만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인생은 고()’라는 말만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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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23. 01:01

[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진주의 잉태 - 아픔은 성장을 낳는다(1)

저는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동시통역사가 멋져 보였고 동시통역대학원으로 유명하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1987년도는 6.29 선언이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등 민주화 운동으로 소란스러웠습니다. 선배들은 반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고 1학년인 우리들에게 이념 써클과 학회 스터디를 권유했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고 3 때 ‘건대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때 언론에서는 '건대 시위가 체제 전복을 하려는 급진 운동권들의 소행이며 그 시위가 북한의 공작이다.' 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지원과 협력관계를 필요로 하는 정부에게 그들은 위험한 친(親)공산주의자였습니다. 마침 언니의 친구 중 한명이 그 시위에 가담하여 건물 속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언론의 말을 무조건 믿었던 저는 그 언니가 간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학 후 그 선배들이 들려주는 사회, 광주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간 언론에서는 편파보도를 한 것을 알았고, 민주화 운동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계속 파행으로 치달았고 많은 교수들이 어용으로 몰렸었습니다. 나는 교수님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영어 전공’과 ‘반미’는 묘한 관계라 조용히 혼자 영어를 공부하고 서구의 언어, 문화 그리고 사회를 공부한다면 ‘친미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시각으로는 ‘반미’가 아닌 ‘승미(勝美, 미국 앞지르기)’ 또는 ‘협미(協美, 미국과 윈윈 협력)’가 해결책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배들과 우리는 세계의 흐름을 보며 미국으로부터 배우려 하기보다는 공부 자체를 거부했고, 우리 20대의 젊은 혈기는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민주화와 정의를 외쳤습니다.

서서히 기성세대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마저도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대학교 졸업해서 직장 잡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사는 ‘행복 시나리오’가 의심스러웠졌고, 우리 모두가 태어난 데에는 좀 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고 느꼈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 심오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점점 공부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수업일수도 간신히 채웠고, 저는 대학시절 간신히 평점 B학점을 유지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열정이 있었으나 분출할 곳이 없었고, 우리들은 술을 마시며 사회를 성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니 이제는 취업 준비로 다들 마음이 바빴습니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반미’를 외치는 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준비할 일도 없었습니다.

‘해외연수를 가볼까’, ‘학원 강의를 해볼까’ 또는 ‘어학원에 좀 더 다녀 영어실력을 늘려볼까’하는 두서없는 생각이 이어졌고, 이런 생각들을 실행에 옮겼지만 여전히 저는 출구를 몰라 답답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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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제 토익만점 비결이요?(2)

누군가가 저에게 토익 만점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저는 두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 ‘영어를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입니다. 영어를 즐기면 자연스럽게 꾸준히 하게 되니 즐거움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 줄 사람을 만나도 좋고, 평생의 선생님이어도 좋고(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이 좋아서 해당 과목을 열심히 공부한 적도 많았습니다!!) 누구처럼 되고 싶어서 또는 누구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어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프랑스 여행 중 만난 친구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을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보며 원문의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 불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는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농구를 좋아하면 마이클 조단에 대한 영어기사를 읽은 후 그 기사를 영어로 다시 요약해서 이야기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삶과 하고자 하는 일에 부합하며 내가 좋아하는 방법을 찾다보면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됩니다. 정말 즐거우면 정말 하고 싶고 정말 간절히 소망하고 찾아다니면 나를 도와줄 인연들이 나타납니다. 내 신경이 온통 영어에 가있다면 좋은 정보, 책, 사람들이 눈에 띄고 주변사람들도 내게 좋은 인연을 연결해 줍니다.

최고의 고수를 찾으십시요. 그것이 힘들다면(사실 힘들지 않다. 간절하면 통한다.) 주위의 사람들과 같이 해도 됩니다. 뜻이 맞는 친구나 학원 동기 중 한명과 파트너로 하여 서로 공부하고 점검해줄 수 있습니다. 사실 정말 간절하다면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실행력의 문제입니다.

물론 아주 절박해도 영어를 합니다. 가끔 나는 약속장소에 늦게 되면 내 의식을 점검합니다. 5분 일찍 출발했으면 여유롭게 가면서 책도 보고 주변의 풍경도 즐기며 매순간을 즐길 수 있는데 늦으면 마음이 초초해지고 불안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가 내 코 앞으로 다가와서 영어하라고 등을 떠밀면 스트레스입니다. 내가 영어를 하고 싶지 않아도 당장 회사의 방침이 바뀌어 영어실력을 요구한다면 회사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습니다. 미리 준비해서 기회는 다가오고 더 나아가 기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회사나 일을 골라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할 수 있습니다.

요지는 ‘즐기자’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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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12. 12:39

Day 6 - Father of coaching, 또 한명의 매스터 코치와 친구하기

정말 멋진 오전이었다.
6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발딱발딱 오뚜기~!!

오늘은 어제에 이어 Whitmore경을 뵙는 날이다.

나는 역시 운이 참 좋다. 그에게 통역사들을 소개시켜 드리고 시간이 조금 남아 차와 샌드위치를 놓고 20여분간 거의 독대를 하다시피했다. 코칭에 있어 지극한 인연인 M 코치님도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차담이 끝날무렵에는 고객사 CEO까지 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친아빠와 나이도 같다. 그런데 역시나 서구적인 개념으로 자신을 그냥 John으로 호칭해달라고 한다. 그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Injustice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사람이 자연에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통제를 하는 아픔을 나누었다.

그는 외유내강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찬사를 보냈고 나는 여성은 인간으로써, 여성으로써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덕분에 다시 한번 남성과 여성이 서로 경쟁상대가 아니라 서로의 고유함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하나로
통합되고 균형잡힌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향후 영국에 방문해도 되냐고 했더니 다른 사람 보러오지 말고 자신을 보러오라고 자상한 미소를 보낸다. *^^* 헤어지면서 아빠같은 미소와 peck on the cheek, wink까지~!!! 그리고 또 한명의 친구가 생겼다. 향후 이메일로 계속 연락하려고 한다.

그에게 우리 한국의 뛰어난 젊은 코치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코칭실습하며 세계에 기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아달라는 말을 함께 남겼다.  향후 대한민국이 전세계 코칭계에서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만남이 끝나고 청계천을 걸었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부드럽다. 가슴이 훈훈해진다. 한 분야의 대가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배우고 그의 에너지를 느끼고 교감했다. 내 영혼이, 마음이 깨어 더더욱 감사한 날이다.

Father of coaching... 성품이 빛났던 사람...
벌써 그가 그립다. 내 마음 속에 그와 그의 메세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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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11. 1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