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I'm back home!

Aug. 5th

 

 

당신께!

 

안녕? 오래간만에 인사드려요. 근 삼 주 만이군요. 어찌 지내셨나요? 전 그제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 서울은 무지 덥더군요. 런던 올림픽으로도 뜨겁고요. 제 마음은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이래저래 뜨거운 여름이네요. 후후~! ^^

 

제가 어떻게 지냈느냐고요? 한마디로 “Dynamic!”이었습니다. 원래 예정했던 선방(禪房, 참선하는 곳이요.)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했어요. 허리가 아프니 오래 앉아있으면 안 된다는 의사선생님과 주변분들의 반대 덕분이죠.

 

대신 많은 곳을 가고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첫번째, 안동입니다. 이곳에서 로고 세라피(Logo-therapy) 세미나를 2일간 참석했어요. 덕분에 빅터 프랭클 박사와 그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앞으로 샤론은 심리학 공부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될 듯 싶습니다.

 

이곳에서 심리학계의 핵심멘토 중 한 분인 전종국 교수님을 뵈었어요. 6년 전 인연이 오늘에 이어지네요. 아마 상담과 코칭 관련 계속적인 교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봉화에 갔습니다. 최근 귀농한 서암님을 뵙고 다른 분들도 함께 뵈었죠. 12년 지기 서암님은 이제 봉화에 빨간 집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래 멀찍이 보이는 바로 이 집... 우리 7사람은 무농약 고추, 상추, 토마토, 각종 과일을 먹으며 담소했죠.

 

 

이후 스승이 계시는 축서사에 갔습니다. 축.서.사! 샤론의 마음의 고향...

 

이곳에서 하루 저녁을 자고 큰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게 큰스님은 영원한 삶의 스승...  저는 이분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올해 안으로 모든 불사(절을 짓는 것)가 끝나면 내년부터는 보다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될 예정이어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행사, 법회, 저서, 동영상과 SNS 등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셋째, 강원도 둔내입니다. 암환우를 위한 로고 쎄라피 3일 과정을 참석했습니다. 통나무 향이 솔솔 나는 이곳에서 묵었습니다. 공부도 하고 맛난 식사도 하고 숲해설도 듣고요.

 

 

 

 

목공예시간에는 이렇게 시계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거 어때요? 당신께 선물~!

 

 

 

함께 했던 코치님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대화와 웃음~!

 

세미나가 끝나고 일행들도 떠났습니다. 저는 이곳 휴양림이 좋아 이틀을 더 머물렀지요.

 

넷째, 춘천입니다. 춘천은 6년전 제 코칭 고객이 계신 곳입니다. 1년의 코칭이 끝나고 5년이 지났네요. 이후 현재까지 가끔 지속적으로 통화하고 만났습니다.

 

작년 말에 개원한 강원대 암센터... 그분은 이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그 활동영역을 넓히셨네요.  현장성과 전문성이 대내외로 인정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성공과 행복이 곧 저의 행복이죠.

 

 

 

 

 

다섯째, 이후 양평에 갔습니다. 제 글쓰기 선생님을 뵈었죠.  유명한 지평 막걸리도 마시고 저녁 내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9월부터 시작되는 학습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몇 시간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우리의 꿈이야기도 함께요~!! 우리는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행복했습니다.

 

아침에 안성을 향해 출발~!

 

여섯째, 안성입니다. 마가스님이 계신 굴암사에 갔습니다. 스님과 담소를 나누었고요. 마침 이곳을 찾은 대학생, 대학원생 친구들과 함께 차도 마셨습니다.

 

그 중 은지양이 기억에 남습니다.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건축을 공부하는 예쁜 20대였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제대로 된 작품 하나'를 꼭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한국을 넘어, 스페인까지... 그리고 글로벌 전역에 걸쳐...

 

 

 

 

담소 이후 낮잠도 잤고요. 쿨쿨~!  달콤해라.

 

이후 스님 2분과 함께 홍신자씨 부부를 만나 저녁식사도 했습니다. 70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열정으로 사는 두 분... 홍신자씨가 직접 진행하는 춤 명상에도 참가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 스님이 스님들 대상 코칭 워크샵을 진행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9월 초에 굴암사에서 코칭 워크샵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6년 전 제가 발원(소망)했던 바로 그것... 스님들께 코칭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돕겠다는 그 소망에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금요일 아침에 굴 안에 모셔진 부처님들을 보면서 또 다시 발원했습니다. 저는 코칭으로 우리 내면의 불성과 신성을 깨울 것 입니다. 코칭을 통해 세상에 많은 부처님들과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 분들이  아픈 세상을 위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것을 압니다. 예전에는 천사와 부처님들은 그냥 다른 곳에서 살고 다른 곳에서 오신 존재들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자신들이 그 천사와 부처님이더라고요.

 

일곱째, 서울 서초동! 이번에는 아들러의 '행복한 부모되기' 프로그램을 2일간 참석했습니다. 참나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어린 시절 초기기억들을 치유하고 본래 내 성품을 깨워 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병이 걸리고 두려움/수치심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는 앞으로 더 큰 걸음을 내딛을 것입니다.

 

여덟번째, 뒷풀이... 그리고 1차 휴가 마무리 축하..

 

신사동 가로수길에 갔습니다. 소중한 동무를 만났지요. 사케와 동치미 국수, 각종 해산물 요리 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워냈습니다. 우리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만들어나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 또한 또 한 사람의 부처님입니다. 흥겹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귀가 길 택시 아저씨마저 흥겹습니다. 삶에서 방황하다 우연히 아드님 덕분에 하느님을 만난 간증을 하시더군요. 동행인 그녀는 내리고 저는 30분여 남아 나머지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행복해보이는 그분을 위해 기도했어요.

 

 

 

 

마지막으로 한남동 제 아지트... 오늘 아침은 조용히 쉬었습니다. 그간의 시간도 회상하고 청소도 하고 책 정리도 했고요. 어머니와 통화도 했고요.

 

조금 전에는 심리학 관련 책도 몇 권 샀네요. 아들러부터 프랭클, 로저스까지 세계적인 심리학자들과 조우하는 여름이 될 것입니다. 설레입니다~!!

 

 

Home, sweet home! 

떠나니 설레이고 돌아오니 포근합니다.  

 

이제 조용히 지난 열흘을 돌이켜 봅니다.

키워드는? 만남, 심화, 확장이네요.

새로운 사람들과 정보들을 만났어요. 기존의 정보와 인맥의 폭도 넓어지고 더 깊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 삶과 일의 재창조자입니다. 그간의 삶을 종합정리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향해 출발할 양식/자원들을 모두 마련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한곳에 모아 쉐런의 '그 무엇'을 만들것입니다. 일가를 이룰 첫 단계죠.

 

이제 며칠간은 최소한의 사람 만나기, 코칭 프로그램 계발, 학습조직 준비 등 9월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주에 다시 2차 휴가를 가요. 이후는 흐름에 맡기려고 해요. 참, 23일(목) 저녁에는 제가 한국코치협회 강의장에서 특강을 합니다. 보다 의미 있는, 충만한 삶을 꿈꾸고 실행하려는 당신을 초대할께요.

 

휴.. 지난 열흘의 여정을 당신과 나누었네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떠세요? 이제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바깥에는 매미소리가 요란합니다.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요. 그 외에는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이제 당신을 느껴봅니다.

 

당신의 인생이 노래라면, 어떤 노래를 만들고 싶은가요?

당신의 삶이 시라면,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이렇게 당신을 느끼며 당신이 꿈꾸는 세상 또한 느껴봅니다.

 

이제 ... 저는 저의 노래와 저의 시를 들어봅니다. 음... 하고 음미도 해봅니다.

 

지난 열흘을 되돌이켜보면 한 가지 배움이 가장 남습니다.

살아가며 상처받고 아픈, 그래서 치유을 원하는 우리...

사랑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지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한가지 할 일만 있을 뿐입니다.

서로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제가 먼저 당신께 다가갈께요. 제가 먼저 사랑한다 말을 하겠습니다. 아니,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랑으로 존재하겠습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당신이기에 드립니다.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당신의 쉐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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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12. 8. 5. 14:54

[코칭 칼럼] 秀蓮華, 세 가지 질문으로 활짝 피라!




秀蓮華, 세 가지 질문으로 활짝 피라!




    노윤경 _ 노윤경 코칭 부티크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Sharon 노윤경입니다. 오늘은 이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궁화(Rose of Sharon)의 의미인 제 영어이름 Sharon 외에도 제겐 소중한 이름이 또 하나 있습니다. 수련화, 빼어날 , 연꽃 , 빛날 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두되 이슬에도 물들지 않는 고결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2002년 어느 날, 스승을 만난 지 1년된 초보 불자가 혼자 낑낑거리며 밤새워 3,000배를 처음하고 받았지요. 물론 부모님이 주신윤경이라는 이름도 사랑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살고 일하지만 2012년 올 1월 한달을 안식월로 삼아 현재 제주에 잠시 쉬며 소중한 벗들에게 봉사하며 책을 쓰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여느 때처럼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운동하고 돌아오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며 긍정적인 사고로 더불어 살아가자.’ 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이 주제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근원적 행복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찰나가 아닌, 근원적으로 행복할까?” 가 제 평생화두였기에 이 나눔이 더 행복합니다.

 

제 이 행복의 원천에는 세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들 덕분에 저는 평생 자신과 소통하며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지요.

“아이, 말도 마요. 윤경이가 아들이었다면 우리 셋째를 낳지 않았을 거여요.”

어느 봄날, 6살짜리 여자아이는 그녀의 엄마가 이웃집 아주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아이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사실 너는 필요 없는 존재야.”라는 대답을 들을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었던 평생의 질문이 이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나, 왜 태어났지?

 

때는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운동이 전국을 휩쓸었고 집안에는 꼭 남자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 또한 대부분의 집안에 팽배해있는 70년대였습니다.

저는 30대 초까지 제가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둘째라, 여자라, 가난해서, 게다가 20대에는 영어사랑이 도를 넘어 한국이 싫고 미국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또래보다 돈을 많이 벌어도, 토익 만점을 맞아도, 대학원을 합격해도, 남들이 좋다는 회사에서 승진을 해도 기쁨은 그때뿐이고 허무했습니다.

 

20년 간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고 부인하면서 두 번째 질문을 맞딱드립니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아 꼬박 10년을 국내외를 다녔어요. 그러다가 30대 초 경상도 봉화의 한 사찰에서 우연히 한 선승(禪僧)을 만났습니다. 고요 속에 빛나시던 그분 모습에 저는 울었습니다.

3년 후 저는 퇴사를 했고 봉화 스승 밑에서 하루에도 15시간을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200일을 보냈습니다. 기도 후 제 진로를 고민했고 결국 출가 대신 속세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이 고개를 들었지요. “세상으로 나아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귀경 후 저는 2년 간 다시 국내외를 다니며 답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2006 4월 참나를 찾고 잠재력을 깨우는 코칭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온전하고 고유한 존재이며 해답은 우리 내면에 있다는 코칭 철학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꼭 맞아떨어졌습니다. 저는 이거다 싶어 지난 6년간 코칭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2, 이 세 질문들의 결과요?

이제 저는 삶에 헐떡거리지 않습니다. 세상과 나를 보는 정견(正見) 덕분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제법무상)’는 것을 알고 괴로움, 괴로움의 근원,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고집멸도)에 대하여 알게 되었지요. 슬픔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기 마련이고 돈도 명예도 그때뿐입니다. 그러니 찰라의 행복이 아닌 궁극의 행복을 위해 이 길()을 가는 것이 이치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8년 전 스승은 이뭣꼬?’ 화두를 주셨습니다. 참선을 통해 고요의 기쁨을 알았고 다른 내면의 보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야 제가 진정 행복해지기에, 저는 앞으로 영어를 통해 그리고 언어를 뛰어넘어 참선을 전세계에 전파하고자 합니다.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며 세상이 제게 원하는 천직을 찾았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정말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제 자신과 세상에 끊임없이 묻고 경청하며 소통한 덕분입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저는 독보적인 CEO 영어코치가 되었습니다. 지난 20년 간 하루 10~15시간, 6~7만 시간 이상을 학습하고 연구해온 영어와 코칭을 통합하여 CEO 영어코칭이 나왔지요.

 

이제 저는 CEO와 각계각층의 리더들에게 영어가 날개가 된다면 10년 후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를 묻고 그 꿈을 이루어가도록 돕습니다. 이분들에게 영어는 더 이상 족쇄가 아니라 날개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원하는 꿈들을 대부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 6년간 해마다 2배씩 성장했고 이제는 주 3일 일합니다.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관세음기도 후 눈을 뜨니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했습니다. 한때 왜 나야? 왜 둘째라 사랑받지 못 하는걸까? 왜 우리집은 가난하지? 왜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 때문에 고생을 하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였던 덕분에 저는 첫째가 가지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웠고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도 배웠습니다. 또한 평생 성실하게 일하셔서 이제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신 부모님을 보면서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면 되는구나.”를 배웠습니다.

 

덕분에 초반의 경영미숙과 시행착오로 대출에 허덕이던 몇 년 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했던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영어 덕분에 22살부터 지금껏 수백, 수천의 기업의 CEO들과 외국의 리더들을 만나 함께 일했고 빠르게 서구의 선진정보를 배울 수 있었지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매스터코치가 목표이기에 낮에는 국내외를 다니며, 밤에는 자면서 이 꿈을 꿉니다.

 

잠시 멈추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제 삶을 돌이켜봅니다. 20대 저는 괴로웠고 길을 찾아 방황했습니다. 30대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40대가 되니 그저 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 암흑시대에 빛으로 다가오신 부처님처럼, 스승님처럼, 저 또한 간절히 정진하면서 동시에 그 누군가를 위해 빛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지난 시간 덕분에 빚어진 제 삶에 뿌리를 굳건히 내려 연꽃으로 활짝 피겠습니다. 이것이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 예수님 그리고 역대 성현들께 감사하는 길이고 세상과 크고 깊게 나누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저와 인연이 되신 당신과 '더불어' 우리 내면의 참나를 깨우고 꽃 피우는 길을 가고 싶습니다. 초대합니다!

 

 

- 마음을 담아 공손히 인사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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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One & Only Coach Academy l posted at 2012. 1. 17. 17:21

[My Journey] 선(禪) 그리고 Zen


, 이뭣꼬!


 

노윤경

 

 

 

휘익~!  나를 태운 JR () 열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일본 카마쿠라에 있는 한 젠센터(Zen Center, Zendo)에 가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상지대 쿠스마노 교수님께 일본의 젠(Zen)을 경험하고 싶다고 특별부탁을 드렸다. 그는 30년 이상 일본 젠(Zen)을 해온 미국 신부이시다. 센터 내에는 격주로 일본어와 영어로 법문이 진행되고 미국, 독일, 일본에서 온 수십 명이 수행을 한다고 했다. ‘거기서는 어떻게 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전수받을까?’ 나는 오로지 그 생각에 젖어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지 11년째다. 헐떡이던 내 삶이 점점 편안해졌다.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덕분에 어떻게 선()을 실천하고 전세계에 선을 알릴까?’가 화두였다. 한창 상념에 잠겨 있는데 누가 자꾸 내 발을 찬다. “철야정진하라 했는데, 무슨 잠이요! 일어나!!” 영문 모를 호통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깜박 졸았나 보다. ,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 요코하마, 요코하마 ~” 방송에서 요코하마 역이라고 안내를 한다. 카마쿠라까지는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 대승사 수련회가 아니네! 선림원(禪林院, 조계사의 2년제 참선 대학원)에서 지난 주말에 문경 대승사로 수련회를 갔었다. 주지스님이신 철산스님은 수련회 참가자들에게 철야정진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전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해서 피곤했다. 자정쯤 몇몇 도반들과 선방(禪房)을 빠져나와 옆방에서 몰래 잤다. 철산스님이 이를 아시고 방으로 오셔서 우리를 발로 차며 깨우셨다. 그게 꿈에 나온 거다. 피식 웃음이 났다. 꿈에서까지 나오다니 내가 참선으로 꽤 고심하긴 하네. 하긴 그 고민 때문에 지금 카마쿠라에도 가고 있지 않는가?

 

나는 CEO 코치다. 리더들은 내 질문을 통해 내면에서 삶과 비즈니스의 답을 찾는다.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무엇이 나를 불법(佛法)으로 이끌었는가?    삼십대 초입, 나는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회사에서 승진도 했다. 나이에 비해 큰 차를 몰았고 일과 약속 속에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항상 무엇인가 2% 부족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경상도 봉화에 있는 사찰에서 한 스님을 우연히 만났다.

 

~!”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친 듯, 그 선승(禪僧)을 뵙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정갈한 회색 승복, 평온한 얼굴, 따스한 미소스님은 빛났고 고요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저분처럼 될래.’ 내 내면은 속삭였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나였다. 이후 그는 내 스승이 되었고 나는 스승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

 

나에게 선()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내게 스승은 간절히 기도하라 하셨다. 처음 3년간은 200번도 넘게 서울에서 봉화를 오갔다. 마침내 2003년에 퇴사를 하고 봉화로 갔다. 스승이 계신 축서사에서 200일 기도를 했다.

 

기도 후 스승은 내게 화두를 주셨다. “이뭣꼬~!” 스승은 선()이란 참나를 찾는 과정이며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하셨다. 나는 남아선호가 팽배한 시대에 둘째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내가 왜 태어났는지 궁금했었다. 게다가 당시 15년 넘게 영어에 빠져 살면서 정체성이 흔들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선은 내게 참생명이자 삶의 근원이라 여기며 좌복에 앉기 시작했다.

 

선림원과의 만남이 시작된 계기는?   어느 날 조계사에서 참선대학원을 설립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회지도층이 참선을 체계적으로 체험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도록 하는 취지라고 했다. 참선, 영원한 자유, 고귀한 벗을 모토였다. 거기에는 조계사 주지스님이신 토진스님과 제방 선승들의 발원이 담겨있었다. 그것이 바로 선림원(禪林院)이었다.

 

너는 더 가져도 좋다.” 부처님은 당시 굉장한 부자였던 수달다 장자(長子)에게 말씀하셨다. 수달다는 한역하면 급고독(給孤獨)이다.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에게 보시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나누니 세상이 따뜻해진다. 내게 선림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나누는 현대판 장자를 키우는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이거다 싶어 나는 서둘러 지원원서를 냈고 합격통지를 받았다.

 

선림원을 만나고 나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지난 8개월 동안 여름방학을 제외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모였다. 그간 선림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첫째, 체계적인 참선이론이 있었다. 고우스님, 적명스님, 월암스님, 영진스님 등의 열정 넘치는 법문과 강의를 접했다. 또한 봉암사, 대승사, 불교문화원 등지에서 수련회를 갖고 선을 체험했다.

 

둘째,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주지스님의 후원, 안심당이라는 맑은 공간, 헌신의 교수진, 운영진 그리고 봉사팀이 있었다. 따뜻한 차, 맛난 공양도 마련되었다. 특히 1기인지라 생길 수 있는 아쉬움 점들도 하나하나 개선되었다. 아니, 문제가 있다 한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좋은 스승이 있고 도반이 있고 도량이 있다.

 

셋째, 재발심의 시간이었다. 수행하겠다는 발심을 잊을 만 하면(!) 목요일이 돌아왔다. 리더에게 하루 저녁은 수십억 또는 수백만원의 거래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원우들은 모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선림원 원우들은 인생이라는 바구니에 크고 중요한 돌을 먼저 놓았다. 참나를 찾지 않고 어찌 근원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2년 선림원 수료 후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불법을 만나고 나는 더 이상 길을 찾지 않았다. 내가 바로 그 길 위에 있고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나, 현업에서나 바로 그 순간 현장에서 펄떡이며 살아있어야 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 했다. 나 또한 장자가 되어 불법을, 승가를, 장자들을 외호하겠다는 발원을 했다. 그 때문인지 학기 초에 선림원 총무로 선출되었다. 더 바빠졌지만 행복했다.

 

현재 나는 CEO 영어코치이다. “영어에 제약이 없다면 10년 후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를 화두로 CEO들이 바로 그 삶을 사시도록 서포트한다. 영어코칭의 첫 단계가 참나(True Self) 찾기이고, 중간단계가 영어실력 향상을 통한 성과 창출이며, 마지막이 어떻게 회향(回向)할 것인가 이다.

 

이제 선림원을 통해 내가 거듭 나서 우리나라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려는 CEO들을 더 근원적으로 도우려 한다. 리더들은 참선을 통해 내면의 불성을 밝히고 사업에서 참나를 구현할 것이다. 리더가 행복해야 조직이 행복하다.

 

며칠 전 삼성동 봉은사도 내년부터 선림원을 개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 땅에 더 많은 선림원과 장자가 나오기를 발원한다. 나는 이 여정에서 내가 할 일을 평생 생각하고 실천하리라.

 

카마쿠라, 카마쿠라

 

다시 방송이 나온다. 드디어 카마쿠라 역이다. 나는 짐을 주섬주섬 들고 열차에서 내린다. 멀리서 쿠스마노 신부님이 손짓을 한다. 내 얼굴에 활짝 미소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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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Purpose] 아, 인도, 인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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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1

11
일의 인도 여행!

인도...  지난 5년 동안 계속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인도가 아직은 위험하니 몇 년 더 기다리라 하셨다. 나는 그저 기다렸다. 

2010년 가을에 기회가 생겼다. 14인의 도반들과 인도로 떠났다. 가이드 2인, 요리사 1인, 운전사와 보조운전사 이렇게 19명은 버스를 타고 때로는 기차를 타고 인도를 누볐다. 함께 한 일행 모두가 불자는 아니다. 하지만 방문지는 불교 8대 성지라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 깨달으신 곳, 열반(돌아가심)하신 곳을 포함하니 인도 뿐 아니라 네팔까지 가게 되었다. 네팔 국경지대에서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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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기에 2000년 넘게 몇 억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쫓아 인도에 오는가?

 

인도는 무지 불편했다. 하지만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극단의 가난과 극단의 풍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도로에 사람과 차, 개와 돼지, 소 그리고 릭샤가 공존했다.

 

수해지역 도로 유실로 길을 몇 시간 돌아가기도 했고 여행 중에는 대만 관광객 2인 피격 사망사건도 있었다. 계피향에 취하는 인도 전통차 짜이에도 빠져 한국으로 사가지고 왔다. 돈 달라고 아니면 무엇인가를 사라고 한없이 달려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뿌리치기도 하고 무엇인가 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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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려고 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왔다. 며칠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서로 대화도 나누고 그 구경온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한번은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나는 이내 그 휴게소에서 밥을 먹던 남학생들에게 둘러쌓였다. 30~40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아.. 당황스럽다... 이런 것을 인기 폭발(!) 이라고 하나?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하는 거며 먹는거 그리고 마시는 것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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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말을 걸고 더러는 핸드폰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얘기하고는 친구 뒤로 숨는다. 그 중 용기 있는 친구들은 내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보라며 공연요청(?)을 한다. 우리 일반인들도 이정도 관심이라면 왜 연예인들이 동남 아시아나 다른 지역을 가면 수많은 이들이 따라오는지 1% 정도는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

이 아이들은 참 맑은 눈을 가졌다. 그 눈을 들여다보니 모두 쑥쓰러워한다. , 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보탬이 되고 싶다. 이 나이 때 삶의 여정은 신나기도 하고 혼란이기도 하리라...

그러다 나는 문득 픽하고 웃었다. 왜 이 아이들이 나와 똑같이 혼란의 시간을 보내리라 추측하지?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우주가 있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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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말로 왠만한 한국인 가이드 뺨 치게 잘 안내하는 가이드 빈투…

 

 

한국여성과 결혼했다는 빈투는 여행사 사장이다. 우리나라나 불교에 대한 역사지식도 서비스 마인드도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빈투 덕분에 일행들은 계속 웃으며 여행했다. 긴 여정으로 일행들이 힘들 때 간식거리를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빈투는 우리가 특별한 손님들이라 CEO 인 자신이 직접 가이드한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실제로 그는 8명 이상되는 가이드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우리를 챙겼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진다. 빈투 덕분에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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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어느 날 새벽에 갠지즈 강을 나갔다. 사람들이 목욕을 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옆 화장터에는 죽은 자들이 화장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배를 탔다. 나는 뱃머리에 앉아 소원을 빌며 강에 꽃과 초를 떠나보낸다.

 

이건 무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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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즈 강에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인생에서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통하고 껴안을 것인가? 내 머리 속은 많은 질문들로 가득 찼고 내 가슴은 계속 쿵쾅거렸다.





*** 

Journal 2

녹야원... 기원 정사 그리고 죽림 정사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던 대부호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이 기원 사원을 기증했다.
당신은 이곳 기원 정사에서 24년을 계셨다. 이 곳에서 부처는 금강경을 설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며 수많은 아라한들이 한 목소리로 그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나는 바로 그 탑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곳에는 꽃비가 내렸다. 바닥이 온통 꽃잎이다.

참선을 가르치시는 달마님은 내게 인도를 떠나는 날 전화를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다르게 하는 것은 '원력의 크기'라 하셨다.

부처는 전대, 후대에 다시 없는 깨달음을 얻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깨달음을 이루었다. 처음에 나는 석가모니를 잘 몰랐다. 내게는 31살에 만나 한결같이 존경해온 내 스승이 그 석가모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덕분에 나 또한 부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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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이 인도여인은 부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이곳 인도에서는 오히려 힌두교가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기독교 또한 서구보다는 우리 땅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부처를 따라 인도에 왔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에도 가보았다. 나는 그 아래 앉아보았다.

 

석가모니 부처가 금강경을 설했다고 하는 탑에도 앉아보았다.

그는 정법을 설했다. 그것은 지혜와 자비(사랑)이다. 사랑은 책임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 왕자> 에서 여우가 말했다. "사랑하면 책임이 있지."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다. 사랑하니까!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기를 원했기에 그 길을 제시한거다.

탑 주변에는 꽃이 많았다. 탑 주변에 계속해서 꽃비가 내렸다. 나는 그 꽃잎 사이에 앉아있다. 탑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있던 스님들의 경전 낭독하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 가르
침이 바람결에 실려온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물처럼 살라. 바람처럼 살라. 네가 원하는 지극한 깨달음을 얻고 세상에, 우주에 큰 사랑을 베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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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내 인생!

 

하늘을 향해 한껏 뛰어본다. 나는 허공에서 내면의 메세지를 얻었다.

Carpe Diem(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 너는 자유하다. 자유이다.

Namaste! (
당신의 고귀한 영혼에 인사드립니다)



****

Journal  3

 

그리고 또 어디?

나는 부처님
열반상에서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델리 박물관에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친견하고 그 앞에서 한없이 서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가 깨닫고 제자를 만나셨다는 곳,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열심히 마음을 닦은 곳들도 가보았다. 그들이 앉아서 마음 수행을 한 곳에 나도 앉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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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다는 한 나라의 왕자로서 세속의 모든 호사를 맛보았고 출가를 했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 - 생로병사-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어했다. 그는 고집멸도 사성제의 진리를 발견했고, 그리고 도를 이루기 위한 8 정도라는 해법을 냈다. 그 첫번째가 정견(正見)이다. 세상에 대한, 나에 대한 바른 시각이 그것이다.

궁극의 지혜와 사랑의 길을 온전히 이룬 존재!

내가 머리로 알던 부처가 이번 인도여행을 통해 실체로 다가왔다. 내 가슴에 부처가 새겨겼다

 

내게 불교는 수많은 '의례' 속에 묻힌 종교가 아니다. 원문 그대로 최고의 () 가르침()이다. 궁극의 지혜와 세상을 향한 사랑(자비)의 실천! 사랑이라는 이 가르침이 기독교의 사랑과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그를 따라 간다. 다만 노윤경, 나의 고유한 색깔을 내면서... 나를 사랑하니까, 세상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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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처다. 우리 모두는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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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11. 5. 19. 08:48

[My Journey] 내려놓기 그리고 떠나기

India!!!!

오늘부터 인도에 갑니다. 제 삶의 방향을 성찰하고 많은 것을 내려놓는 시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글로벌판의 의지를 다지려고도 합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부처님과 예수님! 이번에는 부처님의 삶을 쫓아가보려 해요. 2,600년 전 그 분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을 고민하셨으며 어떻게 깨달았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중생과 어떻게 나누셨는지 또한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만들겠습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기독교 성지순례를 통해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려합니다.

 

한껏 느끼고 사랑하고 배우고 돌아와 나누겠습니다. 제 원력의 크기!


제 마음을 여러분께 보내며 이제 길 떠납니다.

Bliss!

노윤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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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10. 9. 17.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