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일기-2] 어떻게 탁월한 코치를 찾나요?

노윤경은 2006년 코칭을 접하고 이후 2년 가까이 깊이 연구하고 150여 시간을 코칭해왔습니다. 동시에 2006년부터 거의 매주 직접 코칭을 받아왔지요.

2006~2007년 사이에 개인적, 사업적 그리고 워크샵에서 국내외 코치들을(그 중 많은 분들이 MCC, master certified coach) 만났고 그 중 MCC, PCC 등의 코치들에게 그간 직접 코칭도 받았습니다. 많은 연륜을 가진 MCC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당신이 비용 감당이 가능한 선에서 최고의 코치를 만나라' 였습니다.

그 코치님들의 조언을 쫓아 꾸준히 실행에 옮기다보니 그 말이 진실임을 제 스스로 확인하게 되었지요. 지난 2년간 저는 많은 내면적, 외형적 성장이 있었습니다. ROI(return on investment)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첫째. 비전, 사명 찾기와 인생의 걸림돌 다루기: 삶과 일에서의 많은 이슈에 대한 해결책
둘째. 내가 꿈꾸던 삶을 살기: 현재를 즐기기 + 미래를 향해 매진
셋째. 좋은 인연들 만나기: 일과 삶의 소중한 파트너들
넷째.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영적 풍요로움: 많은 감정과 애착에서 자유로워지기 등
다섯째. 실행력 500% 이상 증가와 우선순위 정렬 시스템화

오늘 저는 '어떻게 코치를 찾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H의 깊이와 넓이입니다. 바로 Head, heart, hand이지요.

Head - 머리 즉 이론, 코칭 대화법과 코칭기술에 대한 체화입니다. 코칭교육을 얼마나 받았고 기본기가 되어있는지 확인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론을 배우지 않아도 코칭이 체화가 된 분들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코치협회가 공인하는 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Heart - 심장 즉 코칭에 대한 열정과 고객에 대한 사랑입니다. 고객을 위해 하루 24시간 코칭을 성찰하고 조금이라도 더 돕기 위해 애쓰는 마음입니다.

코치의 의식수준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코치의 성품은 어떠한지 실제 얼마나 코칭적으로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요. 코치가 깨어있고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라면 코치를 만나셨을 때 그 에너지를 느끼실 겁니다.

Hand - 실전경험입니다. 적어도 100시간은 되어야 어느 정도 기본을 넘어갑니다. 자건거를 배울때 타는 법을 머리로 알고 타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 타보고 넘어져보지 않으면 체화되지는 않습니다.

코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고객들을 코칭해보고 뛰어난 코칭 역량을 개발한 코치를 만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코칭은 단순한 대화스킬이 아닙니다. 존재(being)를 건드리는 수준 높은 차원입니다.

코치 자신이 실제 코칭을 얼마나 받아보았는지도 확인해보십시요.

코치는 고객을 위한 거울입니다. 고객은 코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보게 되지요.

코치 자신이 멘토코칭을 받아야 코치 자신의 개인적 이슈가 없어집니다.

그때 고객을 위한 '깨끗한 거울'이 되어 고객을 투명하게 투영해줍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셀프코칭도 있습니다만 보통의 경우 어느 정도 코칭을 받은 경험(제 경험상 최소한 1년)은 꼭 필요합니다.

또한 매스터 코치들이 어떻게 코칭을 하는지 코치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아야 그들에게서 뛰어난 코칭역량을 보고 배워 고객들에게 높은 수준의 코칭을 제공하게 됩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코치인증제도 또한 역량 있는 코치를 찾는데 좋은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인증이 전부는 아닙니다만 인증이 있는 경우 적어도 기본 코칭역량은 갖추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코치연맹(ICF)의 MCC, PCC, ACC 또는 한국코치협회(KCA)의 KPC, KAC 인증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요.

1. 현장경험: 나의 코치는 최소 100~200시간 이상의 현장 코칭 경험이 있다. (   )

2. 성품: 나의 코치는 나와 코칭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항상 기여하고자 한다. (   )

3. 존재감: 나의 코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다. (   )

4. 이론적 기반: 나의 코치는 최소 100시간 이상의 코칭교육을 이수했다.  (   )

5. 거울되기: 나의 코치는 멘토코치가 있고 코치 자신의 이슈가 거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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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8. 1. 11. 02:04

[코칭일기-1] 코칭과의 첫조우

 

2006년은 제게 아주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코칭을 만났으니까요.

처음 코칭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제 직관은 '이거 내가 해오던 건데?! 이것이 이론과 워크샵이 있네. 내가 찾는거야.'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좀 더 알아보기 위해 한 코칭회사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5
11일 처음으로 Co-active coaching이라는 아름다운 코칭 워크샵을 참석했지요. 13일까지 3일 과정을 듣고 내내 잔잔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

이제껏 지식을 전달하는 위주의 교육을 받았던 저로써는 사람의 깊은 내면을 움직이는 코칭이 놀라움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코칭과 사랑에 빠졌고 갈증이 난 사람처럼 양분을 한껏 빨아들였습니다.

 

코칭은 CRW , 인간은 원래 창조적(creative),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고(resourceful) 완전한 존재(wholistic)이라는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요.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믿는 그 철학이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코칭 워크샵을 참석한지 약 한달 보름 후인 6 26일에 당시 ICF(International Coach Federation)의 회장이었던 Parmela Richarde코치가 방한을 했습니다. 그녀는 ICF가 인증하는 전문코치의 최고 단계인 MCC(Master certified coach)입니다.

저는 영어를 잘 한다는 사실 덕분에 그녀와 데모 코칭 세션을 가졌습니다. 200명쯤 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행되었지만 제 생애 첫 코칭이었기에 실제 코칭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에 무모(?)하게 도전했지요.

 

처음 10여분간 전 그녀에게 제 이슈에 대해서 열심히 말을 했습니다. 한참을 경청하던 Pam은 제게 한마디 메시지를 던졌고 전 그 한방’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변의 청중들과 앞에 있는 코치마저 사라지는(?) 몰입의 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그녀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 불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 외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20분여 눈물, 콧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사람 자체가, 제 의식이 전환되었습니다.

 

그 이후 코칭은 제 삶이요 즐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수박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경우 수박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실제 한입 베어 물어야 수박의 맛을 압니다
.

코칭도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코칭이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하여 꿈꾸는 삶을 살기라는 정의를 말씀드리면 참 막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

또 한 명의 나, 든든한 친구라고 하면 좀 더 이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코칭을 실제 경험해보지 않고 책만 읽어서 아니면 누구의 설명을 들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코칭이 돕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고 싶은가요? 성공과 행복을 원하시나요? 코칭이 안내해드립니다.

 

코칭을 통해 우리가 원하고 즐기는 건강하고 행복한 fun에 조금씩 가까워집니니다.

 

여러분을 코칭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깊히 경험해보세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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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2. 22. 23:09

[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두려움과 맞서기: 우리 30+세대는 두렵다(1)


90년대 미국 어학연수 때 일입니다.

사촌 언니, 사촌오빠와 영화를 보러갔다가 주차장으로 나서는데 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니와 오빠에게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저 혼자 극장에 다시 돌아갔습니다.

입구에서 일하는 검표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Excuse me. I think I lost my wallet here in this movie theater.' 하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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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검표원 왈 ‘Excuse me?' 저는 다시 'Wallet.' 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다시 알아듣지 못했고 전 울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제가 당황하는 모습에 공감을 하며 도우려고 했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불편하고 창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 사촌오빠가 돌아오지 않는 제가 걱정되어 극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빠는 검표원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저는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갑을 찾았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말 그대로쪽 팔렸습니다’.

명색이 영어 전공자가 3년 반 동안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도 미국에 와서 wallet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아니면 그 검표원의 청취력에 문제가 있거나!) 땀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평소 발음 좋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던 저였는데 미국에 가니 잔뜩 위축되었습니다. 제 발음을 알아듣지 못할까봐 주눅이 들어서 자꾸 목소리가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상대는 더 못 알아듣고 저는 더 주눅이 들고 해서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그래도 미국 원어민 앞에서 영어를 하는 것은 차라리 나았습니다. 한국말과 영어를 둘 다 잘하는 2세 교포들 앞에서는 영어가 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저는 교포들이 제가 영어 하는 모습을 보고 형편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끈기가 답이었
습니. 부끄러움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니 영어 실력이 향상이 되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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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제행무상 - 모든 것은 변한다.(1)

제가 서른 한 살 때 평생 제 스승이 되실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국내에서도 오지인 경상북도 봉화의 한 사찰에 계시는 그분은 국내에서 평생을 마음공부를 해오셨다는 존경받는 수행자라고 누구인가 제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처음 그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는 '!'하고 말문이 막혔습니다그에게서 나오는 자애와 평온함이란 놀라웠습니다. ‘이럴수가 있구나. 언어를 떠나 온 몸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구나. 나 저분처럼 될래.

그분은 길을 잃고 헤매이던 제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한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매일 매순간 제 몸도, 마음도,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산도 바다도 변했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서 모든 고통이 시작됨을 알게 되었지요.

인간도 세계도 관계도 매순간 변하고 사람은 나고 죽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평생 내 옆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정이 사랑이 되어 점점 더 불타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doing), 내가 가진 소유(having)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변하는 대상에 내 행복의 기반을 두면 내 행복은 쉽사리 변하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은 곧, 변하지 않는 진리에 기반을 한 행복은 변치 않는다는 의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면 상처받을 일도, 상심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모든 일과 사람관계에 있어 마음의 준비를 하면 당황하거나 과거에 집착하고 매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없었습니다.

평생 저는 항상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던지 어디에서 누구와 있던지 즐겁고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항상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의미와 즐거움을 찾아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재미가 없고 식상해졌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취미생활도 시도했지만 즐거움과 만족감은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허전하고 공허했습니다. 술을 마시면 잊을까 싶어 많이 마셔보았지만 더 괴롭기만 했고 술에 취해 실수만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인생은 고()’라는 말만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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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 Sharon 이야기] 진주의 잉태 - 아픔은 성장을 낳는다(1)

저는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동시통역사가 멋져 보였고 동시통역대학원으로 유명하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1987년도는 6.29 선언이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등 민주화 운동으로 소란스러웠습니다. 선배들은 반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고 1학년인 우리들에게 이념 써클과 학회 스터디를 권유했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고 3 때 ‘건대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때 언론에서는 '건대 시위가 체제 전복을 하려는 급진 운동권들의 소행이며 그 시위가 북한의 공작이다.' 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지원과 협력관계를 필요로 하는 정부에게 그들은 위험한 친(親)공산주의자였습니다. 마침 언니의 친구 중 한명이 그 시위에 가담하여 건물 속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언론의 말을 무조건 믿었던 저는 그 언니가 간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학 후 그 선배들이 들려주는 사회, 광주 그리고 정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간 언론에서는 편파보도를 한 것을 알았고, 민주화 운동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계속 파행으로 치달았고 많은 교수들이 어용으로 몰렸었습니다. 나는 교수님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영어 전공’과 ‘반미’는 묘한 관계라 조용히 혼자 영어를 공부하고 서구의 언어, 문화 그리고 사회를 공부한다면 ‘친미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시각으로는 ‘반미’가 아닌 ‘승미(勝美, 미국 앞지르기)’ 또는 ‘협미(協美, 미국과 윈윈 협력)’가 해결책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배들과 우리는 세계의 흐름을 보며 미국으로부터 배우려 하기보다는 공부 자체를 거부했고, 우리 20대의 젊은 혈기는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민주화와 정의를 외쳤습니다.

서서히 기성세대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마저도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대학교 졸업해서 직장 잡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사는 ‘행복 시나리오’가 의심스러웠졌고, 우리 모두가 태어난 데에는 좀 더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고 느꼈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 심오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점점 공부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수업일수도 간신히 채웠고, 저는 대학시절 간신히 평점 B학점을 유지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열정이 있었으나 분출할 곳이 없었고, 우리들은 술을 마시며 사회를 성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니 이제는 취업 준비로 다들 마음이 바빴습니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반미’를 외치는 학생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준비할 일도 없었습니다.

‘해외연수를 가볼까’, ‘학원 강의를 해볼까’ 또는 ‘어학원에 좀 더 다녀 영어실력을 늘려볼까’하는 두서없는 생각이 이어졌고, 이런 생각들을 실행에 옮겼지만 여전히 저는 출구를 몰라 답답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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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l Comment l Category My True Self Journey l posted at 2007. 10. 16. 09:13